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Life in Finland

[베호의 일상] 호유의 첫 출근 in Finland

by 베호 in Finland 2021. 3. 28.

핀란드 생활 3년째 접어드는 오늘, 호유가 첫 출근을 했다. 대학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던 호유를 YBM에서 만난 지도 언 5년이 흘렀다.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던 호유. 공학 석사를 마치고도 '대한민국 직장인'이라는 이름표는 학벌 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몸소 경험한 그녀였다. 호주 유학 대신 나와의 결혼을 선택하고, 출산 이후 쭉 두 딸을 키운다고 정신 없이 지내던, 그 5년간의 시간이 흐른 오늘, "오빠가 대신 출근해서 업무 방향을 잡아주면 안 돼?"라는 뜻은 없지만 이유는 알만한 질문을 던지고 첫 출근을 했다.

영상의 온도를 잠깐 비쳤던 핀란드의 겨울 길은 무척 미끄럽다. 끝까지 뒤에서 지켜봐 줄 수 없는걸 알면서도 두 딸을 태우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아내의 차를 잠시 따라가 본다.

어제 남편으로써 아내의 첫 출근에 멀 해줘야 할까 고민을 했다. 결국은 점심 도시락과 조그마한 차량용 방향제를 달아주는 것 말고는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. 아내가 이걸 보고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 작은 방향제 일지 몰라도 작은 방향제를 아내의 차에 달고 나서 사진을 찍을 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. 역시 행복은 자신이 느끼는 게 중요하다.

첫 출근의 긴장감이란 누군가로부터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것이었다. 최소한 난 그랬다. 15년 전의 이야기지만 호유의 첫 출근으로 인해 그 오래전 첫 출근 날이 새록새록 기억난다. 친구들이랑 세부로 여행을 다녀온다는 이유로 회사의 요구보다 이틀 늦게 출근한 첫 출근 날. 이사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던진 첫 마디는 "xx 씨,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?"였다. 그래, 어쩌면 그때 난 긴장을 안 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.

역시나 호유는 녹초가 돼서 돌아왔다.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. "오빠, 배고파." 역시 일이 많아서 녹초가 된 것 같지는 않다.